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비 찰튼 (문단 편집) ===== 데뷔 후 ===== 그 다음해 10월 프로 계약을 체결한 찰튼은 유스와 리저브 팀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보였고, 1956년 10월 6일, 마침내 [[올드 트래포드]]에서 찰튼 애슬레틱을 상대로 한 1군 데뷔전에서 2골을 넣으며 첫 발을 내딛는다.[* 맨유는 찰튼의 2골에 힘입어 4-2로 승리했다.] 이 시즌에 찰튼은 '''17경기 12골'''(리그 14경기 10골[* 여담이지만 후에 치러진 찰튼과 원정 경기에서는 [[해트트릭]]을 기록했다.])을 기록, 훌륭한 첫 시즌을 보내며 팀의 호성적[* 리그 우승, FA컵 준우승, 그리고 잉글랜드 팀 최초로 참가한 유러피언 컵에서는 4강에 올랐다.]에 기여했다. 이것이 이 시기에 [[병역]]을 수행하느라 주말에만 축구를 하면서 거둔 성적임을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. 큰 기대 속에 시작된 1957-58 시즌, 찰튼 역시 15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을 리그 2위, 유러피언 컵 4강에 올려놓은 상태였다. 리그 14경기를 남겨놓고 11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며 당시 1위 [[울버햄튼 원더러스|울버햄튼]]을 승점 6점 차이로 무섭게 추격하고 있었으나... '''[[뮌헨 비행기 참사|베오그라드 원정을 마치고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비행기가 뮌헨에서 연료를 보급한 후 이륙하는 데에 실패, 추락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만다.]]''' 찰튼은 생존한 9명의 선수 중 하나였지만 사고의 후유증으로 이전만 못한 활약을 보이며 15경기에서 4골(A매치 제외)을 넣는데 그쳤고, 팀도 이후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9위로 리그를 마감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